경제논평

나는 대학시절 학생들에게 고전을 읽으라고 강요하는 교수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몇 세기 전 유럽에서 쓰인 책을 이해하기에는 이론은 물론 역사나 영어 모두 어려웠기 때문이다. 툭하면 외국 학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무게 잡는 분들도 존경하지 않았다. 남의 권위를 빌려 자기 주장을 펴는 것도 못마땅했지만 그렇게 전달된 지식이 우리 현실을 이해하는 데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믿었다.

경제학은 인간과 사회에 관한 학문이다. 역사적, 제도적 맥락 없이 이론과 정책을 말하기 어렵다. 논리 전개와 증거 도출을 위해 수학과 통계를 사용하지만 이는 도구에 불과하다. 사회가 움직이는 원리를 이해하려면 사람의 본성이 제도나 관습과 얽혀 돌아가는 모습부터 관찰해야 한다. 현대 경제학에서 무슨 성향이니 법칙이니 해가며 가르치는 것들도 결국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정리한 것이다. 따라서 이론이나 사상은 이것이 개발된 환경이나 제도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비로소 응용의 생명력을 갖는다. 

선진국 것이라고 물불 안 가리고 받아들이다 보면 알맹이는 빠지고 껍데기만 배우기 쉽다. 역사적 제도적 안목이 부족한 어린 학생들에게 외국 고전을 무조건 읽히는 것이 무모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사실 나는 박사과정 끝 무렵에 가서야 몇몇 경제학 명저들을 읽을 여유가 생겼는데 그때도 졸리고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다시 한 세월이 지난 이번 겨울, 모처럼 아담 스미스를 다시 공부할 기회가 생겼다. 여전히 어려웠지만 내가 그동안 학자 구실을 제대로 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값진 소득이 있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성찰 없이 알량하게 정제된 이론만 익혀 이를 다시 학생들에게 가르치지 않았는지, 정부 정책에 대한 논평을 하면서 과연 이 모든 논쟁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었는지를 반성할 계기가 되었다. 

경제적 자유와 시장의 자율적 기능을 강조하는 데서 출발하는 스미스의 이론은 후세와 타국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상당한 왜곡과 남용을 겪는다. 자본주의가 성숙하며 부르주아 기득권 세력은 스미스의 이론을 정부 간섭에 대한 편리한 방패막이로 삼았다. 그러나 정작 스미스 자신이 걱정한 것은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의 복지였다. 그가 시장을 강조한 것은 이것이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초래한다는 점 못지않게 시장이야말로 이름 없는 개인들이 골고루 혜택을 받는 분배 체계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비록 대량실업이나 빈부격차와 같이 자신이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자본주의 병폐에 대해서는 특별한 처방을 내리지 못했지만 부자의 탐욕을 경계했고 분배의 본질과 시장의 한계에 대한 고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는 중상주의적 무역 규제와 같이 특권 세력의 독점적 이익을 보장해주는 정부 개입을 비판했지만 동시에 시장의 실패를 보전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을 광범위하게 인정했다. 서민자녀에 대한 무상교육을 지지했고 누진과세를 제안한 그가 오늘날에는 ‘작은 정부’를 강조하는 보수주의 경제이념의 지주처럼 여겨지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스미스는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관점에서 볼 때 그 누구보다도 진보적이고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사상가였다. 또한 시장의 작동원리, 경제성장의 동력, 그리고 복지후생의 잣대에 이르기까지 그의 경제학은 철저하게 인간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는 인간의 창의력과 잘살려는 본능에 의해 생산성이 높아지고, 경제적 자유와 경쟁에 의해 시장이 움직이면서 사회구성원 모두가 잘살 수 있음을 보였다. 정부가 개입하는 경우 시장을 보전하는 긍정적 측면과 부패와 비효율이라는 부정적 측면이 모두 가능함을 주지시켰고 이는 곧 정책목표나 수단의 초점은 특정 시대의 가치나 환경에 따라 달라짐을 암시한다.    

스미스는 경제학이 체계화되고 전파된 근원이다. 변방으로 갈수록 모형이나 통계가 경제학의 모태인 것처럼 우쭐대는 경망스러움과 성장과 분배, 시장과 정부를 딱 부러지게 갈라야만 선명한 정책이나 사상인 것처럼 설쳐대는 무모함이 두드러진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 없이 훌륭한 학자나 부강한 국가가 나올 수 있을까. 스미스는 대학에도 경쟁 원리가 필요하다고 보아 교수 봉급은 수강생의 숫자에 비례해 결정할 것을 주장했다. 그를 다시 읽으며 유일하게 꺼림칙하게(!) 느낀 대목이었다 (050207 매일경제에 실렸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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